아프리카 대륙에는 콩고라는 이름의 두 국가가 있습니다. 하나는 '민주콩고공화국' 그리고 '민주' 라는 단어를 뺀 '콩고공화국' 입니다. 민주라는 단어가 빠졌다고 해서 콩고공화국이 독재정부라는 뜻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실상은 '민주' 라는 단어를 포함한 민주콩고의 정치가 훨씬 더 독재에 가깝습니다.
이 두 나라는 이름도 비슷하지만, 세계에서 수도 간 거리가 가장 가까운 나라로도 유명합니다. 두 나라의 수도는 수심 깊기로 유명한 콩고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쟁 피해가 만연한 아프리카에서 이들 콩고는 별 다른 갈등이 없었으니 그것도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민주콩고공화국은 오랜 기간 벨기에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런 탓에, 나라 이름도 당시 벨기에 황제의 이름을 따 '레오폴드 빌(Leopold Ville)' 로 지었죠. 시간이 흘러 1960년대 독립 후에는 '자이레' 로 불렸고, '로랑 카빌라' 쿠데타 사건 이후로 지금까지 '민주콩고' 라는 이름을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령 콩고공화국은 프랑스 탐험가 '브라자' 의 이름을 따 '브라자 빌(Brazza Ville)' 이라고 불렸고, 독립 후 한 차례 콩고공화국으로 국명을 바꾼 다음 지금까지 줄곧 같은 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콩고공화국과는 별 갈등이 없었지만, 민주콩고는 이미 2차례 큰 내전을 겪었습니다. 아프리카 역사에서 내전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지만 민주콩고의 내전은 여타 국가에 비해 규모 면에서 압도적입니다. 그런데 최근 M23 이라는 반군 집단이 콩고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분란을 일으켜 다시 세간을 주목을 받고 있는데 자칫 3차 내전으로 격화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닙니다. 따라서 오늘은 M23과 함께 '민주콩고의 내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P.S.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민주콩고는 한국 경제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사정을 너무 먼 나라 이야기라 생각지 말고, 아래 간략히 정리한 내용만이라도 꼭 정독 부탁 드립니다.
1차 내전 : (독립 후) 로랑 카빌라, 소규모 쿠데타로 정권 탈취
독립 후 처음 정권을 잡은 사람은 조셉(Joseph Kasa Vubu) 입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기고 반 강제로 사임 후 4년 만에 사망했으니 2번째 대통령 모부투 (Mobutu Sese Seko)부터 설명하겠습니다.

모부투는 민주콩고 2대 대통령으로 1965년부터 1997년까지 30년 넘게 장기 집권한 독재자였습니다. 그의 정확한 정치적 배경은 알 수 없으나, 1950년부터 1956년까지 벨기에령 콩고 헌병대에서 복무하였으며 1960년에는 30세의 나이로 국방장관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모든 군 권력을 손에 쥔 모부투는 사사건건 정부 정책에 반기 드는 좌익 '파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를 내쫓고 1965년 자신이 직접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니, 그의 나이 불과 35세때의 일입니다. 모부투가 독재자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반대파를 처형하는 그의 변태적인 방식 때문입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반대파 정치인을 모조리 묶어 헬기에 태운 뒤 콩고강 악어 서식지에 던져 버리고는 그들의 사지가 뜯겨 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군인 출신이었던 모부투는 의의로 정작 자신의 군사 훈련에는 매우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1997년 르완다 반군 세력을 중심으로 결성한 '애국전선' 이 현저히 밀리는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게릴라 위주 전력으로 수도 킨샤사를 점령했으니 말입니다. 당시 애국전선에서 지도자로 추대한 인물이 바로 민주콩고 3대 대통령 '로랑 카빌라(Laurent Kabila)' 입니다.

로랑 카빌라가 지휘하는 애국전선은 본래 르완다 내전, 학살을 피해 도망나온 '투치족' 군대입니다. 소규모 군대로 어떻게 민주콩고처럼 거대 국가의 정부군을 상대로 쿠데타를 성공시켰는지 의아하지만, 그 내막에 우간다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쨌든 1996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애국전선은 정부군을 상대로 교전을 벌였고 불과 6개월만에 수도 킨샤사를 점령하며 로랑 카빌라는 민주콩고 3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십 만의 피해자가 났다고 하지만 정확한 사망자 숫자는 아직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이 민주콩고에서 발발한 첫 번째 내전입니다.
이후 모부투는 다른 국가로 무사히 망명하여 여전히 호화스런 생활을 한다고 알려졌으나, 사망 당시 몸무게가 약 40킬로그램 밖에 되지 않아 실제 알려진 바와 달리 일상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 스트레스의 원인은 역시나 암살 위협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불안한 정세 때문에 한 번 밀려난 권력자가 또 언제 세력을 규합하여 다시 도전해 올 지 모르니, 불안의 싹을 자르기 위해 로랑 카빌라는 수시로 모부투 암살 작전을 꾸렸던 것 같습니다.
사실 민주콩고 내전을 이해하려면 앞서 '르완다 내전과 학살' 역사를 먼저 살펴 봐야 합니다. 1차 내전에 이어 1998년부터 2003년 사이에 발생한 2차 내전은 사실상 아프리카 版 세계전쟁으로 불릴 만큼 많은 국가들의 개입이 있었고 사상자 규모도 최소 5백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즉, 1차 내전이 내수용이라면 2차 내전은 진정한 국제 무대였습니다.
다음 시간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민주콩고 2차 내전은 우리나라 '나당 연합군' 을 연상케 합니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로랑 카빌라의 애국전선은 앞서 말했듯이 우간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르완다 세력이었습니다. 그러니 카빌라가 정권을 잡은 후부터 우간다, 르완다는 '빚쟁이' 처럼 이것저것 이권 사업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내정 간섭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에 격분한 카빌라는 두 국가의 군부대 철수를 명령했고 이를 계기로 민주콩고와 우간다, 르완다 연합 間 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정리하면, 삼국 통일이 끝난 후 당나라가 철수하지 않고 신라에게 이것저것 내정 간섭을 한 것처럼, 우간다와 르완다 역시 카빌라 정권을 위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내정간섭과 전쟁 위협의 배경에는 당연하게도 '돈' 문제가 걸려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전쟁 양상을 넘어 그 공공연한 내막에 가려진 '돈' 얘기도 함께 해 볼까 합니다.
오늘도 긴 글 차분히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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